김예인

김예인

실현
켄트지에 소묘 / 54.5cm× 40cm / 2021년

어떤 명백한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여백의 종이 위에 연필을 올려놓고 점 하나를 찍는 순간 그것은 세상에 실현된 것이다.
이 자화상 또한 마찬가지다.
짙은 흑연가루를 머금은 점이 무수한 선이 되고, 무수한 선이 무수한 면이 되어 ‘나’는 흑백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에 실현되었다.

김예인

능소화
스케치북 종이, 붓펜, 검은 펜 / 21cm× 29.7cm / 2021년

능가할 능(업신여길 능)에 하늘 소 자를 써서, 그 이름자체로 고고하고 오만한 능소화가 있다. 과거 장원급제자의 화관에 꽂아주는 어사화이기도 했던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와 영광 그리고 그리움이다.
이화여고 서문으로 가는 길 중 비밀화원 같은 계단을 지나면 능소화가 우거진 장소가 있다. 처음에는 여려 보인다고 생각한 꽃이 이렇게 당찬 이름을 가졌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감회가 새로웠고, 내가 이 능소화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예인

잠수와 비상
한지, 수채화, 붓펜 / 75cm× 35.5 cm / 2021년

물과 하늘은 닮았다. 빛에 따라 색이 변하는 찬연한 푸른색이고, 그 끝으로 다가가기 힘들며 이를 통해 우리가 무한(無限)을 느끼게끔 한다. 이 무한에 홀려 나는 하늘 높이 날고 싶었고 물 속 깊이 잠수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수영장에서 저 아래, 아래로 헤엄치다 몸을 돌려 수면 위를 바라봤다. 형광등의 빛이 물결에 의해 파편이 되어 하늘 의 햇빛마냥 산란했다.
이를 보며 문득 내가 두 가지 소원을 이룬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잠수와, 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