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유준
<무한육면각체 전개도>
39.4x54.5cm
검은 볼펜, 연필, 적색 색연필
2026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나는 “M.C.예서”(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예서)라는 유명한 판화가의 [Convex and Concave](볼록과 오목)의 작품을 참고하였다. 예서 작가의 그림은 수학적 사고와 시각적 착시를 이용해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을 담고 있는데, 불가능한 구조, 패턴이 반복되거나 도형이 점점 변하면서 반복되는 구조를 그려내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공간이 바뀌는 착시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그는 주로 기하학적 패턴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참고한 작품 역시 그런 특징을 가지며 그에 더해서 계단과 건물구조, 사람을 그려내어 하나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참고 작품을 보면 처음에는 그저 가운데를 기준으로 대칭인 건물구조라고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왼쪽 부분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시점으로 , 오른쪽 부분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오른쪽과 왼쪽이 서로 반대의 시점으로 그리어 결국 중앙에서 두 시점이 만나 시각적 착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작품에서는 참고 작품의 기하학적 구조와 시점의 차이를 주어 시각적 착시를 일으키는 특징을 이용하여 정육면체 구조를 중심으로 한 구성과 가운데를 기준으로 빛 방향의 차이를 주어 만든 대칭적인 그림자를 통해 시각적 착시를 만들어내었다.
이 작품은 ‘기하학적 추상화’ 경향을 따라 그려진 작품으로,추상화를 할 대상으로 시인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을 선정해 이 시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추상화의 대상을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로 선정한 이유는 단지 시를 표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시가 기하학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기하학적 추상화를 중심으로 잡아 추상화의 대상을 찾아다녔는데, 이때 나는 추상화보다는 ‘기하학적’이라는 단어에 더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내가 기하학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 까 고민했었는데 마침 시인 ‘이상’의 시를 찾게 된 것이다. 시인 ‘이상’은 학교에서 국어를 배우며 많이 접해봤던 시인이기도 했고,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화가였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은 워낙 특이한 시인이라 이상의 작품을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건축무한육면각체]는 그중에서도 특히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이 시가 기하학적 부분을 많이 담고 있어서 고르기도 했지만 만약 이 시를 다른 사람이 읽게 되었을 때 내가 그려낸 그림을 같이 보게 되면 좀 더 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시를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시를 골랐다.
[건축무한육면각체]는 시인 ‘이상’이 미츠코시 백화점에 대한 인상을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과 같이 기하학적 표현을 사용해 묘사한 시이다.이 시에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을 구경하다 옥상정원에서 도시의 외경을 바라본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달리는 자동차들이 즐비한 거리로 나서는 화자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미츠코시 백화점은 신문물과 현대적인 상품을 접할 수 있는 익숙치 않은 공간이었다. 시를 보게 되면 여러 상품들과 그에 대한 비유표현, 기하학적 용어들이 많이 나오며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나는 이런 부분에서 시인 ‘이상’이 미츠코시 백화점을 보고 느낀 혼란스러운 감정과 압도되었던 그떄의 느낌이 시에 반영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그림에 집어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에서 나타난 이상이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겪은 경험들을 작품에 불규칙적으로 집어넣어 시의 스토리를 드러내면서 그 속에 느껴지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담아내기로 하였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두가지 요소를 고려하였는데, 그 두가지가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구조의 구성과 평면과 입체의 공존이었다. 작품 전체의 전반적인 모습을 정육면체 여러개가 겹쳐지며 반복하는 구조로 구성하였는데, 이 구조를 기준으로 정육면체를 불규칙적으로 나누고, 나누어진 정육면체끼리 연결시켜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구조를 표현하였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복잡하게 그려 넣는 것이 아닌 공간을 나누어 범위를 정해 그 공간들을 불규칙적으로 배치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기하학적 도형이 드러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을 위해서 예서의 작품에서 보이는 시각적 착시 효과를 이용하였는데, 이를 위해서 평면과 입체의 공존을 나타내야 했다. 그래서 단순히 평면적으로 보이는 그림에 적색 색연필과 연필을 이용해 면과 그림자를 그려 넣어 공간감을 추가하여 평면과 입체를 함께 표현하였다.
이 그림은 실제의 사물이나 상황을 추상화하여 표현한 시를 이용하여 시의 내용을 한번 더 추상화하여 그려내어 추상화에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긴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단순한 추상화가 아닌 ‘기하학적’ 추상화이기에 기하학적인 요소를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였다. 이는 그림을 표현할 재료의 선정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물감과 같은 습식재료보다는 연필과 볼펜 같은 건식 재료가 정밀하고 직선적인 기하학적 요소를 표현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