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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나

<스펜서>
39.4x54.5cm
종이에 아크릴물감 채색, 진주 스티커
2026

나에게 영화 <스펜서>는, 관람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뚜렷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과거 겪어야 했던 왕실에서의 고단함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명암의 극명한 대비와 강박적인 대칭 구도, 인물의 미세한 감정선까지 포착해 내는 클로즈업 샷의 결합은 그녀의 지독한 고립감을 관객의 피부에 직접 와닿게 한다.
가장 압도적이었던 순간은 단연 저녁 만찬 장면이다. 다이애나가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인 진주 목걸이를 기어코 뜯어내어 수프와 함께 씹어 삼키려던 처절한 행위, 그리고 이어지는 구토 장면 이후 그녀의 목에 언제 그랬냐는 듯 온전하게 채워져 있는 진주 목걸이의 대비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는 개인의 의지로는 결코 뒤집을 수 없는 왕실의 견고하고 폭력적인 현실을 상징한다. 이 기괴하고도 슬픈 장면을 통해, 나는 '진주 목걸이'가 다이애나의 삶을 얼마나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는지 그 숨 막히는 질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족쇄'가 존재한다. 영화 <스펜서>를 통해 엿본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 역시,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억압과 고립의 연속이었다. 나는 타인은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그녀만의 무거운 족쇄,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삼켜내야만 했던 처절함을 나의 시선으로 표현하고자 이를 이번 작품의 핵심 주제로 선정했다.
작품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진주 목걸이를 끊어 수프와 함께 씹어 먹는 만찬 장면을 모티브로 삼아 '수프를 먹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으로 재구성하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연출은 화면의 구도다. 의도적으로 인물 얼굴의 아랫부분부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인물이 현재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 눈빛에 슬픔이 담겼는지 분노가 담겼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이를 통해 나는 인물의 감정을 규정짓는 것을 넘어, 내면의 깊은 억압을 시각화하고자 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인물은 관객으로 하여금 족쇄와도 같은 현실을 어떻게든 씹어 삼켜내야만 하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결국 이 작품은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빌려, 보이지 않는 통제 속에서 각자의 고통을 침묵으로 소화해내야 하는 우리 모두의 내면적 투쟁을 그리고 있다.

© <EWHA GIRLS' ART> OF EWHA GIRLS' HIGH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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