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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현

<필터링>
39.4x54.5cm
아크릴 물감, 색연필, 우드락
2026

이 작품은 수혈팩, 청소도구, 비오는 날, 퇴근길 지하철 등 일상 속에서 피로함과 우울함을 느끼게 하는 사물들을 밝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재해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들, 그중에서도 <슈퍼플랫 플라워>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일본 애니메이션 그림체에서 착안해 선명한 색감과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해당 작품의 꽃 캐릭터는 사실 환경오염, 전쟁 등으로 인한 절망과 불안 등 복합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무거운 소재를 화려한 색과 귀여운 캐릭터로 포장하는 아이러니를 통해 덤덤한 얼굴 뒤에 어둡고 복잡한 내면을 숨긴 현대인의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독특하고 역설적인 표현 방식이 인상깊게 다가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표현 방식을 내 방식으로 색다르게 재현해 보고 싶었다. 작가가 애니메이션풍 그림체를 참고한 것처럼, 이 작품도 다이어리 꾸미기를 참고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오브제들은 파스텔톤의 다채로운 색과 스티커처럼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그려졌고, 스크랩북 형태로 배열되어 부정적인 것들을 소중한 기억의 일부를 써내려가듯이 다루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테두리를 이루는 레트로 기기는 그림을 화면을 통해 한 꺼풀 너머에서 바라보는 느낌을 주어 관람자와 그림 사이 거리감을 높이고, 이면의 메시지와 표면적인 그림 사이 괴리감을 더욱 잘 보이게 한다.
작품에 쓰인 오브제들은 수혈팩과 링거, 반찬고, 각종 약 등 병과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의료용품, 청소도구와 앞치마, 슬리처 등 가사노동에 쓰이는 물건들, 컴퓨터와 서류철, 공책 등 사무업무에 쓰이는 용품, 늦은 시간 퇴근할 때의 아무도 없는 지하철 풍경이나 비오는 날의 우중충한 풍경 등이 있다. 화려한 색감 외에도 약물 속 해파리와 비눗방울, 빗방울 밑의 꽃이나 모니터 속의 바다처럼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꿈같은 풍경들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지는 환상을 뜻한다.
어린 시절에는 학생이 되는 것, 어른이 되는 것,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해 동경과 환상을 품지만 현대인의 팍팍한 삶은 이런 환상을 산산조각내 버린다. 특정 요소만 걸러내는 필터링처럼 행복할 수 없는 풍경 속에서도 불행을 걸러내고 환상과 소망을 찾아볼 수 있도록 현실을 필터링해 그림에 담아 보았다.

© <EWHA GIRLS' ART> OF EWHA GIRLS' HIGH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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