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서
유영서
<뒤안길>
색연필
39.4x54.5cm
2025

참고 작품: 에드워드 호퍼 – 『Rooms by the Sea』 (1951)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로 간결한 구성을 통해 고독과 인간 삶의 정서를 표현하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건물, 창문, 방, 인물의 정적인 풍경으로 구성되며 공간이 그 자체로 감정을 전달한다. 『Rooms by the Sea』는 이러한 호퍼의 공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열린 문을 통해 방에서 바다가 보이는데 이는 외부와 내부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정적인 이미지를 통해 특별한 울림과 여운을 준다. 작품은 공간을 통해 존재의 상태나 시간의 흐름, 정서적 거리감을 함축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이러한 호퍼의 태도는 나의 작품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나 역시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한 공간을 주제로 삼되 그것을 바라보는 시점에 주목하였다. 그림의 시점은 마당에 앉아 조용히 주변을 관찰하는 누군가의 시선처럼 설정하였으며 시야 안에는 오래된 주황색 지붕과 공사 현장 등이 함께 들어온다. 이는 과거와 현재,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한 장면 안에서 공존하고 충돌하는 풍경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어린 시절 머무는 모든 공간은 그곳에서의 기억이 어떻든 언젠가 한 번쯤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어떤 냄새, 소리 또는 계절이 상기시켜주는 그리운 공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작품 속 공간인 태안, 나의 외갓집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시골 바다마을의 모습이던 태안은 근래 펜션과 캠핑장, 심지어는 공사 중인 넓은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내 기억 속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작품의 전경은 나의 외갓집 마당으로, 중경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옆집으로, 후경은 공사 중인 리조트 건물로 설정하였다. 이는 그곳의 실제 풍경이기도 하면서 한 공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고 누군가는 그 변화의 뒤에서 아쉬워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색연필의 질감은 마치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듯 다소 흐릿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색연필의 그 부드러움을 통해 변해가는 공간과 낡은 기억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