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다연

이다연
<Eternal Sunshine: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나무판에 아크릴 물감 채색
54.5x39.4cm
2025

이다연

본 작품은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등장하는 장면을 기반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영화는 기억을 지워주는 기술을 통해 과거 연인을 잊으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기억과 감정, 사랑이라는 주제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내가 선택한 장면은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침대에 누운 채 설원 한가운데 놓여 있는 장면이다.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 속에서 조엘의 무의식이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는 감정의 조각들. 침대라는 사적인 공간과 설원이라는 낯설고 고요한 배경이 결합되며, 마치 꿈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 영화의 흐름 속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이 장면을 정지된 미술 작품으로 옮김으로써, 그 감정의 무게와 의미를 천천히 되새기고 싶었다.


사랑하는 이가 나를 잊었을 때,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기억을 잃은 상대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던 그 사람’일 수 있을까?

작품 활동을 통해, 나는 ‘기억’이라는 매개 없이도 지속될 수 있는 감정이 존재하는지, 사랑이란 결국 서로를 기억하는 행위인지, 아니면 기억조차 지워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는 무언가인지 질문하고 싶었다. 기억이 사라져도 감정은 남을 수 있는가, 혹은 감정은 기억에 의해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다. 표현 기법에서도 이러한 감정의 밀도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표면에 꾸덕하고 밀도 높은 질감을 살렸고, 단조로운 해변가 설원의 배경 속에도 감정의 흐름이 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페인팅 나이프를 사용해 파도 형태의 질감을 만들었다. 눈밭 위의 미세한 움직임과 인물의 내면에 일렁이는 감정을 동시에 상징하고자 하였다. 또한 설원 속 고요함과 몽환적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전체적인 색감의 채도를 낮추고 차분하게 조절하는 데 신경을 기울였다. 눈으로 덮인 침대는 이질적인 두 세계의 충돌이자, 무의식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잔향이다. 어쩌면 사랑은, 기억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남아 있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 <EWHA GIRLS' ART> OF EWHA GIRLS' HIGH SCHOOL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