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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정

한우정_2024
<SPACE>
크레파스, 오일 파스텔, 볼펜, 색연필, 물감
45x61cm

“아르 브뤼트 예술가들은 지식이나 교양과는 무관한 사람들, 백지처럼 기성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화려한 겉모습이나 사회적 지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한 민중의 편이고, 대중의 목소리이다.“

위는 ‘아르 브뤼트’ 장르의 창시자이자 프랑스인 예술가 장 뒤뷔페가 한 말입니다.

아르 브뤼트, 소위 아웃사이더들의 그림은 체계적이고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그린 그림-주로 정신 병원의 환자들이나 죄수들이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정신의학에 관심이 있던 저는 정신질환을 해소할 방법에 대해 찾던 중 아르브뤼트를 발견하였고 그 날 이후 이 장르에 매료되어 꾸준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꼭 스스로 아르 브뤼트를 창작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짜 미술치료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라는 명분으로 이 장르에 발 들일 순간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릅니다.

아르 브뤼트는 가공되지 않은 예술입니다. 고정관념, 편견 따위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이 본능에 이끌려 손을 움직이는 장르죠. 따라서 미술에 문외한이기는 하나 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들어온, 또 19년동안 인생을 살면서 이미 고정관념에 잔뜩 물들여진 제가 쉽게 창작할 수 있는 그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미 저에게는 가장 어려운 장르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 선을 긋는 순간순간에 수많은 정형적인 생각들이 개입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전 아르브뤼트가 표상하는 미술의 본질에 주목했습니다. 현재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저의 감정을 담아 창작한 자연 그대로의 예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느끼는 것을 그 자체로 토로할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저로 채웠습니다. 제가 느낀 것, 보고 들은 것, 그것들을 가공하지 않고 이 작품에 채워넣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그림은 다소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제겐 ’아르 브뤼트‘로의 한발짝을 증명해주는 것이기에 기쁘게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제 그림의 중앙에 있는 자동차는 장 뒤뷔페의 ‘Automobile a la route noire(검은 도로 위의 자동차)’를 오마주한 것입니다. 아르 브뤼트라는 장르와 함께 제가 가장 처음 접한 작품으로서, 깊은 인상을 받아 그려넣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속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생명체가 운전을 하고 있고, 그 앞에는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잘 맞지 않는 두 명의 종이 인간들이 서 있습니다. 자동차의 아래에는 두 상자들이 보입니다. 들어오도록 유혹하는 입구가 있고, 들어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는 무늬들로 뒤덮여있습니다. 태양은 강렬하고 달은 변덕스럽고, 세계는 이리저리 휘어져 엉킨 원색의 선들로 꽉 차있으며 그 속에선 정체불명의 물체들이 떠다닙니다. 알 수 없고, 혼란스럽고, 어떻게 보면 매혹적이면서 또 어떻게 보면 거부감이 듭니다. 이것이 제가 느낀 세계입니다. 제가 보는 태양은 항상 너무 뜨거웠습니다. 달은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모양이 달라져 굉장히 재미있었고요. 그 태양과 달 아래 있는 세계는 제가 속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이 곳은 너무 복잡해서 그 속에서 제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때마다 느낀 감정들을 담아 이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감정만을 가지고 손이 가는대로 그렸습니다. 꼭 담고 싶었던 의도나 감춰두었던 의미 같은건 없습니다. 이렇듯 자유로운 그림이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제가 그린 세계에 대해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고민 끝에 제목을 SPACE라고 붙이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에 제가 느낀 세계를 그려넣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한 칸은 빈칸으로 두었으니 제 그림을 보면서 모두가 다양한 감상을 얻어 자신만의 우주를 덧그렸으면 좋겠습니다.

한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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