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세연
홍세연_2024
<도시의 정체성>
수성 드로잉 펜, 색연필
45x61cm
이화여고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출근 시간에 꽉 막힌 지하철을 타며, 나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 찬 시야에 나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마치 내가 나의 어린 모습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무표정의 어른들이 무채색을 옷을 입고,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모두가 같은 빠른 걸음으로 떼를 이루어 이동하는 모습에서 묘한 기괴함과 징그러움, 무서움을 느꼈다. 나이가 들고 있다는 느낌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있다는 소속감은 나에겐 그저 사회의 한 점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상한 무력감만 준 것 같다.
도심 속에 있는 우리 학교 근처 지역의 지도를 작은 사람들로 그려넣었다. 이는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알 같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모습으로 내가 지하철에서 느낀 징그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청소년들이 있는 학교와 그 근처의 사람들에는 색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이와 멀어질수록 색이 사라지는 것은, 사회로 나아가며 여러 고난과 비교, 사회적 벽 등에 부딪히며 어릴 때 가지고 있던 각자의 개성과 색을 잃어가는 모습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도시 곳곳에 색이 있는 사람을 배치하였다. 이는 여전히 자신의 개성을 지키려는 어른들의 파릇한 마음들을 향한 응원이다.
내가 그린 도시의 어른들은 대부분 색이 없지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만약 이 그림에 사람이 없었다면 이 그림에는 건물부지도, 도로도, 광장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그려넣었지만 내가 한 사람을 더 그렸거나 덜 그렸다면 도시의 형상은 바뀌었을 것이다. 색이 없더라도 사람 한 명은 도시의 모습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도시는 사람을 꼭 필요로 하고, 사람은 도시의 정체성이다. 나는 사람들을 차별하여 색칠을 하였지만 도시는 색이 있든 없든 사람이 꼭 필요로 한다는 것 또한 말하고 싶었다.
